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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인 초등교사, 과로사 후에도 사랑받아. 학년초 수업외잡무로 관상동맥경화 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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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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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한결  공인노무사 정 경 심

 

 

        

만인의 연인인 초등교사, 과로사 후에도 사랑받아

학년초 수업외잡무로 관상동맥경화 급사

 

동료 전원의 진심어린 진술서 받을 인간성은

 

  과로사 사건의 경우 회사 동료 전부나 부서원 전부의 탄원서나 진술서를 받아 오는 유족들이 있다. 특히, 관리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간부가 사망했을 때 형식적인 탄원서가 줄을 잇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성실성, 헌신성, 인간성, 봉사정신 등의 말잔치에 그치고 만다. 이 사건도 동료 교사들 전원의 진술서가 보이길래 으레 실속 없는 서류들이겠거니 치부했다. 보통 50장, 100장이 들어와도 그 중에 쓸 만한 1, 2장만 뽑아서 내기 때문에 나머지는 기록철만 두꺼워지는 애물단지다. 쓸만한 진술서가 있나 훑어본 나는 마치 그 진술서만 갖고도 한 젊은 교사의 열정적이고도 고달픈 일상을 그린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해 한 자리에서 일독을 하게 됐다.

 

  이 사건의 망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자, 학교 인성부장을 맡고 있는 6살, 8살 딸의 아버지인 젊은 교사이다. 원고인 그의 처 역시 초등학교 교사로, 교대 시절부터 캠퍼스 커플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 오던 잉꼬부부였다. 교사들의 진술서 중에는 “미혼인 여자 후배들에게 어떤 신랑감을 만나면 좋겠느냐고 물어본다면 ○○○ 선생님 같은 분이라는 대답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라는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내용이 있었다. 이 사건은 공무원연금공단에서는 망인의 과로가 심장사를 일으키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공상이 불승인되었지만, 행정소송 1심에서 공무상사망으로 인정받았고, 항소심인 2심에서도 1심이 확정되었다.

 

산더미 같은 잡무에 압도된 망인 

 

  우리 사무실에서는, 이 사건의 성공은 동료 교사들이 쓴 진술서의 힘 때문이었다고 얘기한다. 그 진술서가 바탕이 되어 1심 재판부가 다음과 같이 사실 인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 담임교사 업무 - 5학년 담임교사로, 1학년 담임교사의 연간 수업시수 830시간에 비해 1,054시간. 학생별 사진촬영, 학부모와 편지 등으로 의사소통. 사망 전년도 6학년 졸업생들에 대한 생활기록부, 건강기록부 자료 이관 등 잔여업무하면서 6학년 부장이던 교사의 전출로 그 교사의 업무까지 수행. 나) 인성교육부장 업무 - 그는 학기초인 3월에 사망했는데. 2년전 유년대 업무하면서 생산, 발송한 문서가 36건, 접수한 문건이 26건인데 비해 1년전 인성교육부장때의 문서는 각 87건, 333건이다. 학교에서의 업무조정표에 의하면 인성교육부 교사 8명 중 망인과 녹색어머니회 담당 교사의 업무가 과중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학년 초 교내학생 생활본(소책자) 전면 개정 작업과 학교폭력추방의 날 행사 준비와 시행. 다) 친목회 회장 및 남교직원회 총무 업무 - 하계연수, 추계연수의 참석자 파악, 일정수립과 행사 진행. 전년 말 성과급 분배 업무. 비정규직 직원들의 친목회 가입 성사. 남교직원회 총무 업무. 라)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업무 - 학교 프로젝트 중 심리정서발달지운사업 담당으로 양성평등 교육, 학교응집력 향상 프로그램, 학교폭력예방교육, 진로교육, ADHD 대상 학생 집단프로그램, 학교부적응학생 미술치료, 전문가상담, 인성검사 업무 맡아 사망 2일 전 기초조사서 작성 배포. 마)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업무 - 3월 초 교원위원으로 선출되어 학교운영위원회 때 보고할 학교예산 개선사항 검토. 바) 교육청 감사 준비 업무 - ▽▽▽ 교사와 전년도 학업성취도 평가 통계 작성. 전국적으로 성적조작, 통계오류 등 문제 생겨 교육청 감사 예정되어 전출간 ▽▽▽ 교사 없이 감사 대비 업무. 인원보고 오류와 답안지 분실 확인하고 브리핑 자료 만들고 분실된 답안지 찾았으나 없어 수정보고.”

 

  이것도 판결문에 나온 망인의 업무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인데, 생략된 내용 모두 교과나 교과준비 업무 외의 잡무들이다. 교사들이 잡무에 시달린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그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었는데, 유족이 싸들고 온 사과박스 서류더미를 보곤 기가 질렸다. 그 중 우리가 잡무와 관련돼 제출한 증거서류만 해도, 학부모총회 설명 원고와 PPT 자료, 반 소개 PPT 자료, 칭찬스티커, 남선생님이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교실 환경미화 사진, 사랑의 대화 게시판, 줄넘기 급수 게시판, 사랑의 편지쓰기 파일꽂이, 독서인증 게시판, 수학오답공책 학생용 라벨, 나의 학교생활 포트폴리오 파일 개인용 라벨, 학년초 개인별로 찍어준 학생들 사진과 사진 찍을 때 목에 걸어준 이름표의 도안, 반 티셔츠 제작 사진, 부적응 학생 부모에게 보낸 편지와 답장들, 안전관리 점검표, 안전지킴이 점검일지, 안전둥지회 활동일지, 학교 상담일지, 부장회의록, 예산편성기본지침, 어린이 안심서비스 관련철, 약물남용 교육 관련철, 양성평등교육 관련철, 성폭력교육 관련철, 배움터 지킴이 관련절, 친목회 관련철, 학교폭력예방 관련철, 학교폭력 사건 일지, 돈 갈취 관련 조사서 및 경위서,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안건 상정, 어린이 안심서비스 카드 지급현황(반별 통계)...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산더미 같은 서류에 압도되고 말 정도다.

 

고혈압과 관상동맥 경화 약점을 극복한 건 심금울린 업무태도

 

  이 선생님이 그저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만 이런 잡무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들은 두 아이의 엄마인 내 눈에 잘도 보였다. 선생님은 저학년도 아닌 5학년의 이름표를 손수 도안해서 코팅하고 줄을 매달아 목에 걸어 준 다음 일일이 한명씩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학년 초에 찍은 사진을 보고 학년말에 얼마나 성장했는지 비교해 보기 위해서다. 집중력 장애가 있어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의 상태를 알리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같이 아이를 교정시켜 보자고 보낸 편지, 전학 온 아이의 부모에게 줄 준비물 메모와 환영 편지, 뇌성마비로 불편한 딸을 잘 돌보아 달라는 학부모의 전자우편에 대한 답장. 이 답장을 한번 보자. “... 부모님께서 그 동안 □□이 키우시느라 애 많이 쓰셨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잘 키우셨으니 앞으로 더 행복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머님 말씀 잘 참고하여 일년 동안 □□이 잘 보살피고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라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메일이나 전화로 편하게 하셔요.... 담임 올림”

 

  그러나, 이 선생님한테도 업무상사망을 인정받는 데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망인은 혈압이 160/100, 150/90, 139/100mmHg가 측정되는 등 고혈압이 있었으나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았다. 부검한 결과 관상동맥에서 전반적인 경화 소견이 있었고, 관상동맥에 최대 80%의 협착 소견이 있었다. 과로로 인한 생리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 급성심근경색의 유발요인이라는 의료기관의 감정소견이 있어 체질적 소인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와 유사한 정도의 고혈압과 동맥경화 소견이 있는 경우 여지없이 개인적 소인에 의한 사망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가 주장하고 제출한 과로 사실과 그의 업무 스트레스가 지어내거나 과장한 허구가 아니라고 받아들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재판부의 심금을 울릴 만한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교감선생님이 힘들여 통계보고 업무를 하는 망인에게 “너무 형식적인 통계가 많아 윤곽이 잡히면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니 망인은 “저는 거짓말을 절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면서 숫자를 아주 꼼꼼하게 조사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정확히 보고했다는 이야기, 학교 친목회장을 맡았는데 연수장소 선호 설문조사에서부터 시작하여 1박2일의 연수중 교통편, 숙소, 식사 메뉴까지 미리 예약하고 간식까지 챙겨주어 동료들이 호화여행을 한 것 같다고 찬사했던 이야기, 학교 운영위원회 교사위원이 되어 담임들한테만 배당되던 학급운영비를 교과담임들에게도 주자고 건의했던 이야기, 부장회의시간마다 통학로, 등굣길 개선, 후문 개방, 안심서비스, 학교지킴이, 정문지도, 커텐, 운동장 사용, 운동회 만국기 제작, 학교 예산과 회계에 대해서 꼼꼼하게 살피고 다른 학교와 비교한 발언 등을 쏟아 붓고 동료들을 설득해서 부장회의가 외부 감사를 받는 듯 하다고 농담을 했던 이야기, 교직원 중 비정규직은 친목회 회원이 될 수 없는 점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문제되고 있는데 굳이 친목회에서 배제시킬 필요가 있느냐”며 일일이 교직원들의 동의를 얻어 비정규직 교원을 친목회에 가입시킨 이야기.... 이런 에피소드들만 보아도 망인이 열혈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망인이 특히 3월 들어서 휴일근무를 계속하고 밤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는 여러 동료의 진술이 있었으나, 야근대장이나 휴일근무대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의 근로시간을 계량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접하면서 망인의 노고가 얼마나 많았는지 재판부도 익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취약한 심혈관계 기능

 

  망인의 사망은 우리의 슬픈 교육현실과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전국의 초등학교까지 시행된 일제고사, 즉 전국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망인의 사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과장일까.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까지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게 된 일제고사는, 각 지자체, 학교에 영향을 미쳐 부정채점, 성적 조작 등의 부작용을 낳았고, 망인이 사망한 한달 전에 임실, 공주, 대구, 서울에서 성적 조작 부정사건이 터져 감사 광풍이 전국에 불어닥쳤다.

 

  망인의 학교에도 실사단이 오기로 되어 있어 교육청에 학업성취도 결과를 보고했던 망인은 6학년 학년부장이었던 ▽▽▽ 교사가 전근가는 바람에 혼자서 감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결과보고가 잘못된 것이 하나라도 드러나게 될 경우 중징계를 받게 된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때인데, 전년도 6학년 담임들과 일일이 대조를 해 보니 인원 오류와 답안지 분실이 발견된 것이었다. 감사시에는 ‘수행평가 답안지 일체’를 준비해 놓으라는 교육청의 시달이 있었고, 원래 답안지는 3년간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망인은 분실된 답안지를 찾느라 학교 구석구석을 다 헤매고 다녔고, 행여 이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해서 인원 오류보고나 답안지 분실을 야기한 교사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알고보니 2개반에서 인원이 잘못 보고되었고, 답안지는 ▽▽▽ 교사가 전근으로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분실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망인은 이 과정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자연히 입맛도 떨어져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했다. 이 문제를 교육청에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 다른 교사들과 의논도 해 보았지만, 결국 애초 교육청에 결과보고 담당자이며 이번 감사 준비 담당자인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망인이 받은 심리적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험지 부정채점이나 부정보고를 확인할 원천이 없어진 만큼 감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 동안 육체적으로 벅찬 업무로 인한 피로감에 견줄 것이 아닐 정도로 컸던 것 같다. 판결문에는 여러 가지 많은 업무 중의 하나로 교육청 감사 준비 업무를 열거하였으나, 사실 이 업무의 이면에 있는 망인의 스트레스는 그의 심장을 흔들어 놓지 않았을까. 물론 꼼꼼한 망인의 감사브리핑으로 인해 감사는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책임감 강하고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인 망인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망인은 사망하기 전 날 저녁식사 때 처인 원고에게 “피곤하다. 요즘 쉽게 지치는 것 같다. 부장 그만 둘까”라 했다는데, 지치면 안되고, 피곤하면 안되고, 늘 밝고 완벽해야만 하는 그의 무거운 짐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원고는 말한다. 망인이 뭇 여선생님들로부터 ‘동급 최강’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지만, ‘동급 최강’은 일에 치여, 책임감에 치여 그 어여쁜 딸내미들과 자신을 두고 떠나버렸다고.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시비가 오가던 와중에 누구라도 아까워할 수 밖에 없는 젊은 교사 하나가 이렇게 죽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