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과 사람들

마케팅팀장 된 20년 기술자의 스트레스. 전직 스트레스와 과로인한 뇌경색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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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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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졌어요!” 

 

    몇일 전 이번 사례 주인공을 만났다. 1심에서 뇌경색을 업무상상병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제기해서이다. 항소심 계약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1심 소장 제출일로부터 판결문 송달받을 때까지 꼬박 20개월이 걸렸다. 지겹지 아니한가! 그런데 다시 항소심이라니.

 

    그래서 내가 처음 사건 계약하자 할 때 잘 생각해 보시라고 하지 않았는가. 뇌경색에 대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인데다가, 원고는 내 눈에 꽤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직접 상담을 하러 왔고, 그 때에는 이미 병세가 완연히 호전되어서 복직된 상태였다. 말씨도 어눌하지 않았고, 사리도 분명하고, 의사소통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소송해서 받을 수 있는 이익이라고는 요양비 얼마와 몇 달간의 휴업급여, 그리고 아주 낮은 등급의 장해급여. 그런데 변호사비용 생각하고 그 세월 고생할 것 보태면, 더구나 공단은 항소, 상고를 옵션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주판알을 튕겨보면 소위 실익이 없는 소송이 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다지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음에도 원고는 굳이 소송을 하자 했다. 왠지 해야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1심에서 승소하기도 했거니와 이번에 만나보니 소송은 이 분의 존재의 의미였다. 아니, 그렇게 거창할 것까지는 없어도 자신을 확인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왜?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회식에 끼기도 힘들다. 술 담배로 못하게 됐지만 한시간 앉아 있으면 그렇게 피곤하다. 신문도 안본다. 집에서 뭐가 고장나도 들여다 볼 생각이 안 난다. 운전하기도 귀찮다. 광화문으로 이사와서 다행이다(우리 사무실이 강남에서 광화문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강남이면 지하철 여러번 바꿔타야 하는데 잘 모르겠고, 물어보는 것도 힘들다. “집사람이랑 애들이 할아버지 같다고 그래요” 우리 나이로 이제 51세인 원고다. “내가 달라졌어요!”

 

    괜스리 콧날이 시큰했다. “아무개씨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몸이 바뀐 거예요. 뇌기능이 떨어지니까 전반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신경전달물질도 변화되고, 그러니까 우울감도 느끼고...” 흔히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의 가족들은 “사람이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유순했던 사람이 화만 내고, 명랑했던 사람이 짜증을 내고, 또 이지적이기만 했던 사람이 부쩍 눈물이 많아지고... 그가 특별히 비관적인 사람이어서, 혹은 미성숙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몸이 변하고 덩달아 마음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산재를 입은 뒤 겪는 마음의 고통, 자신의 신체와 기능의 변화를 보고 겪는 절망감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자살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달라졌어요”란 말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렸다. 이걸 돈오돈수라 하나? 겉으로 볼 때는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원고에게서 그 변화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것이다.

 

생소한 업무에도 적극적이었던 원고, 기술자가 마케팅을!

 

    이제 와서 이해가 되는 대목이 원고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업무상상병 여부를 다툴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 성격의 취약성이다. 실제로 웬만한 스트레스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성격이 있는가 하면 내향적이고 꼼꼼한 성격은 스트레스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사례들을 대하다 보면 많은 피재자들은 업무에 대한 완벽성, 책임감이 남다른 한편,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남에게 부탁을 잘 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경우가 많고, 걱정이 많다. 그런데 이 원고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었다. 20년간 안하던 일을 맡아서 어려웠다는 말만 했지, 자기 성격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고, 동료들의 진술서에 흔히 나오는 “꼼곰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더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라는 대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변했다는 것이다.

 

    원고는 축협에 냉동기를 다루는 기능직으로 취업하여 축산물 공판장, 사료공장, 육가공공장 등에서 20년간 냉동기나 기계 기구장비 관리를 했다. 중간에 축협이 농협으로 통합되고 원고는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경기 북부에 있는 농협의 시 지부로 발령이 났다. 문제는 기능직이 아닌 일반직 발령으로, 연합마케팅업무와 경제사업 전반을 담당하게 된 일이었다. 이렇게 기능직을 마케팅 분야로 인사발령한 예는 원고가 처음이었다. 연합마케팅이란 농산물을 브랜드 상품화시키고 판로를 개척해 주는 사업이고, 경제사업이란 자체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업이다. 신용카드, 보험, 예금, 적금 업무도 가외로 수행했다.

 

    원고가 농협 시 지부에 발령난 것은 2. 2. 이지만, 한달간은 현장적응직무과정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시지부에 출근한 3, 2.부터 뇌경색으로 쓰러진 3. 19.까지 근무한 것은 불과 2주 남짓한 기간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성격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지도 않은 원고가 뇌경색에 쓰러지게 된 것일까.

 

    생소한 마케팅, 경제 용어가 난무해 가시방석 같았던 교육을 마치고 처음 출근한 시 지부에서 원고는 첫날부터 연합마케팅사업 추진과 관련된 사과작목반 업무협의회에 참석했다. 몇일 사이에 참석한 회의만 해도 경제상무업무협의회, 시 농정과 간담회, 연합사업업무협의회 등등 이루말할 수 없고, 회의 참석을 위한 사전정보와 지식 숙지, 회의자료 준비로 인한 중압감은 말할 수 없었다. 있는 자료를 복사하여 편집한다 하더라도 진행하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익히는 것만도 힘이 들었다. 심지어 출근 일주일 후에는 경제사업추진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능직으로 근무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하고 특별히 접촉해서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었고, 실적경쟁도 없었는데, 여기서는 관청, 다른 농협의 관리자, 출하농민 등 끊임없는 대화와 모임을 이끌어야 하고, 관리자가 되었기 때문에 업무추진력도 발휘해야 하는 등 원고 일생 처음으로 복잡다단한 업무와 마주해야 했다.

 

통근 부담돼 전세아파트까지 얻을 정도로 열성적인 원고

 

    원고는 처음에는 서울인 집에서 시 지부가 있는 곳까지 출퇴근을 하려고 했지만, 편도만 1시간 20분여가 걸리는데다가 야근이 많아져 지부 인근의 모텔에서 숙박하기까지 하였다. 급기야 원고는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직장 근처에 전세아파트 계약을 해서 이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새 아파트를 마련하느라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급격하게 바뀐 근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고는 교육원에서 직무교육을 받을 때 부임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부에 전화를 하여 출근 뒤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고, 지부에서는 2008년도에 생산된 사과중 재고물량을 처리하는 게 급하다고 답해 주었다. 원고는 처음 맡는 사업도 잘해보고 싶은 욕심에서 동료 교육생들한테 사과 구매를 부탁하였고, 첫 출근 후에는 그 바쁜 와중에도 동료들에게 물어가며 학교, 군부대, 회사 식당, 대형마트 등에 수시로 전화를 하여 판매 상담을 했다. 다행히 지역물류센터와 사과 1,004박스를 판매하는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이 사과를 포장하고 출하할 일손이 부족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원고는 인부들과 같이 출하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때인데다가 작업장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임시로 천막을 하나 쳐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보면 손발이 모두 오그라 붙었다. 당시 작업을 하던 여성 인부들은 방한복과 장갑, 모자, 털신을 준비해서 그런대로 잘 적응하였지만, 이런 일을 처음 해 보고 단신 이사를 하면서 겨울 옷을 준비하지 못한 원고는 사과박스를 나르느라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 3일 동안 출하작업을 하면서 원고는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계속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3일 동안 출하작업을 마친 원고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었으나 다음주로 예정된 세부 사업계획서를 제출, 2009년 출하약정서 협약체결에 대비해서 자료와 계약 내용을 하나하나씩 검토하느라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화요일인 3. 17.에는 10:00부터 16:00까지 안성교육원에서 시설채소 약정출하사업 교육에 참석하라는 지시에 따라 교육에 참석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귀가하였으나 원고는 자신에게 할당된 카드 영업을 해 볼 생각으로 전에 근무하던 음성 계육 가공공장으로 향했다. 카드영업은 ‘사냥대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진행될 만큼 경쟁을 부추키고 개인별 순위를 매겨 근무평가에 반영하는 것이었으므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원고는 음성 공장에서 관련 기업 대표들을 만나 식사와 스크린골프를 치면서 신용카드 홍보를 하여 결국 여러명으로부터 카드 가입신청을 받았고, 다음날 서울에서 카드 영업을 할 생각으로 서울인 집으로 자정 무렵 귀가했다. 다음날 원고는 지인들이 있는 서울에서나 영업이 가능할 것 같아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카드 가입을 받았다. 그런데 운전 도중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들렸으나 몸살이라고만 진단받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몸 상태가 개운하지는 않았으나 2일이나 외근을 하여 사무실이 걱정된 원고는 다음날인 3. 19. 새벽 06:30 경 집에서 출발하여 출근을 하였고, 밀린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 생산자들과의 상담이 예정되어 있어 이들과 상담을 하던 중 원고는 갑자기 쓰러지게 됐다.

 

“업무내용과 책임의 질적 변화, 업무환경의 변화”로 육체?정신적 과로 인정

 

    증인을 2명이나 채택하고, 의료기록 감정을 3군데에서 받느라 재판은 늘어질대로 늘어졌지만, 재판부는 결국 냉동기술자가 생소한 마케팅 업무를 하느라 힘들었던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전직 스트레스와 과로인한 뇌경색 산재 인정

 

    “원고는 흡연력이 있기는 하나 관련 질병 없이 비교적 건강한 편에 속하였는데.... 전에는 주로 축산물 관련 기계기사로 일하던 자로서 종전에는 담당한 적이 없는 농산물의 연합마케팅업무, 경제사업, 보험상품, 예금상품, 신용카드상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근한 후 주거를 위한 임대차계약의 체결 및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된 각종 회의 준비 및 참가, 사과 포장 및 출하 작업, 출하 계약의 준비와 체결, 신용카드 회원 모집 등으로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많은 시간 동안 근무를 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는 바, 원고는 업무 내용과 책임의 질적 변화,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이 사건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로 보이고, 이와 같은 육체적?정신적인 과로가 주된 발생 원인은 아니더라도 주된 발생 원인과 겹쳐서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하였거나 기존 질환을 자연적 경과를 넘어 악화시켰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숨찬 보름여를 뛰어온 원고에게 남은 것은 이제 달라진 ‘나’이다. 다행히, 농협에서는 원고를 다시 기능직으로 복원시켜 주었다. 이미 달라진 원고는 예전 같지 않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술자리가 더없는 고역이 되었고, 모르는 업무였지만 아등바등 남들을 졸라 카드가입을 받던 패기는 없어지고, 자신을 돌보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이 소송을 하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기억을 더듬는 것이 그 시간 동안 삶의 목적이 되었다. 항소심에서는 별로 신경을 못쓸 것 같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무실에서 부르면 달려올 것이다. 자신에게, 자신의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통화하는 것이 싫지 않을 것이다.

 

    이제 돈이 안되는 소송은 하지 마시라는 말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이 가면 하시라는 말도 가끔 하게 되지 않을까.

 

 

                                                                          법무법인(유)한결  공인노무사 정 경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