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과 사람들

중국동포 엄마, 용감한 모성의 뜨거운 눈물. 의사소통 안돼서 빚어진 폭행은 업무상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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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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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한결  공인노무사 정 경 심

 

 

중국동포 엄마, 용감한 모성의 뜨거운 눈물       

의사소통 안돼서 빚어진 폭행은 업무상재해

 

“우리 아들, 식물인이 안됐으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이○○씨. 우리가 맡은 사건 당사자는 뇌출혈로 쓰러진 그의 아들 윤▽▽이지만, 병석에 누워있는 아들을 대신해 모든 일을 보고 다니는 그 엄마를 일러 우리는 그냥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의 원고인 윤▽▽의 이름을 대신 불렀다. 윤▽▽를 볼 기회가 없었으니 우리는 그의 어머니인 이○○씨의 사연을 듣게 됐고. 말 이상의 위로를 해 줄 수는 없었지만, 딱하기 짝이 없었다. 

 

  방금 이○○씨가 왔다갔다. 1심 패소, 2심 승소. 3심 승소로 상고심까지 확정되었으니 법원에 소송비용상환결정신청을 해야 하겠기에, 1심에서 들였던 변호사 비용 영수증을 갔다 달라 했더니 바지런히 1심 변호사 사무실에서 영수증을 받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는 비운의 여인이다. 하얼빈에서 살던 남편은 1996년 돈벌이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왔고, 4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용잡부를 하며 가족과 헤어져 살았다. 남편은 2000년 골프장 공사를 하던 중 산사태가 나서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 사망으로 살기 어려워진 그는 2000년 남편을 산재로 잃은 한국땅으로 들어와 공장, 식당, 가정집(파출부) 등을 전전하면서 고생을 하다가 중국에서 대학을 마친 아들 윤▽▽를 불러들이게 된다. 윤▽▽는 가구공장에 취업하고, 이○○씨는 자신도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아들을 돌보게 된다. 이○○씨가 아들의 새벽밥을 지은지 4개월여만에 윤▽▽는 같이 일하는 팀장 최□□이 내려친 스프레이건으로 머리를 얻어맞는 바람에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켰다. 이제 그는 반신마비의 중증 장해자가 되었다. 이국 땅에서 남편을 산재로 잃었는데, 아들마저 병상에 눕게 된 것이다.

 

  한국 말을 하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던, 어찌보면 그래서 폭행을 당했던 아들은 이제 중국말에도 문제가 생겼다. 말이 어눌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인격에도 이상이 생겨 걸핏하면 화를 낸다. 그래도 이○○씨는 다행이란다. 아들이 죽지도 않았고, 식물인도 안됐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한다(그는 식물인간을 식물인이라 부른다).

  

남편 사망 산재 이은 아들의 뇌출혈 산재

 

  이○○씨와 죽은 남편은 조선학교를 몇 년 다녀서 우리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중국학교를 다닌 자녀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공장에 들어간 윤▽▽는 왜 나도 몇 년이라도 조선학교를 보내주지 그랬느냐며 엄마를 원망했다고 한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힘든데 말까지 안통하니 구박덩어리였고, 듣는 게 고함이고 욕이었다. 4개월여를 공장에서 고생하던 윤▽▽는 어느 하루, 작업 도중 팀장에게 뺨을 맞자 자재 각목으로 팀장의 머리를 때리게 되었다. 화가 난 팀장이 스프레이 건으로 윤▽▽의 머리를 내리쳤는데, 그만 머리가 깨져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켰다.

 

  업무중 일어난 사고라 이○○씨는 물론 회사에서도 당연히 산재로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은 윤▽▽과 동료 사이에 일어난 사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윤▽▽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의 간병 때문에 당장 공장을 그만두고 병원으로 들어간 윤▽▽는 변호사사무실을 물색해서 행정소송을 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원고가 최□□의 작업지시에 불응하고 나무막대로 최□□의 머리를 때려 피가 나게  하여(이는 최□□이 뺨을 때린 것에 대한 방어행위로서 사회적 상당성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최□□로 하여금 이 사건 가해행위를 자극, 도발하였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이 사건 상병이나 이 사건 가해행위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자신과 아들의 생업을 잃게 된데다가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이○○씨로써 패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남편의 죽음은 세월이 흐른 탓인지 견뎌낼 수 있었지만, 아들이 불구자가 된 것은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고 했다. 중국 본토 사람들보다 유독 자식사랑이 유별나다는 조선족답게 이○○씨는 원무과로, 인근 교회로, 백방으로 도움을 청했다. 누구는 중국 동포라고 동정도 하지만, 누구는 결국 중국인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으로 냉대했다. 억척스러운 이○○씨는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여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가끔 중국교포들의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들은 따지고 묻는 데 선수다. 토론에 익숙한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아서 그런 것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이들이 갖는 피해의식은 생각보다 깊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족이라고 업신여기는 사람에서부터 알량하게 받는 월급을 가로채려는 사기꾼까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1심까지 패소했으니 더 그런 것 같았다.

 

  다른 사무실에서 패소한 사건을 맡는 것은 언제나 부담 백배다. 사건 결과가 승소로 뒤집어지면 물론 기쁨도 백배겠지만 의뢰인의 간절함을 떠안는건 언제나 버겁다. 다행히 우리 사무실에서 진행한 항소 사건은 승소로 끝이 났다. 재미있는 것은 결론이 다른 1심, 2심이 모두 같은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근로자가 타인의 폭력에 의하여 상해를 입은 경우, 그것이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 기인한 경우 또는 피해자가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한 경우에는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대법 1995.1.24.선고 94누8587 판결)”는 판결이었다. 여기서 1심은 윤▽▽가 가해행위를 도발하였다고 하였고, 2심은 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1심과 2심은 사건 경위에 대한 사실인정을 달리 했다.

 

 

의사소통 안되는 외국인, 폭언이나 폭행은 직무에 수반되는 위험

 

  1심은 “원고는 팀장인 최□□, 도장보조원 김○○과 목재 가구자재의 도장작업을 하고 있었다. 최□□은 작업도중 원고가 자재를 넘어뜨리고 발로 차자, 원고에게 발로 차지 말고 자재를 올려놓으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러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때 최□□은 원고가 지시에 응하지 않고 비웃는 것으로 생각하여 욕을 하면서 원고의 왼쪽 뺨을 때렸다. 그러자 원고는 나무막대(길이 84cm, 두께 1.3cm)로 최□□의 머리를 때려 피가 나게 하였다. 이에 최□□은 순간적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스프레이건으로 원고의 머리를 때렸다.”고 사고경위를 인정했다.

 

  2심의 사실인정은 1심과 뉘앙스가 약간 달랐다. “원고는 도장을 마친 목재 가구자재를 다른 도장보조원인 김○○과 함께 들어 건조실로 옮기려고 뒷걸음하다가 실수로 도장 작업을 하기 위해 세워놓은 널빤지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원위치에 돌려놓지 않고 발로 툭툭 차서 옆으로 치웠다. 최□□은 원고에게 널빤지를 작업대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하였으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원고가 어색한 자세로 웃자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하여 뺨을 때렸다. 갑자기 뺨을 맞은 원고가 작업도구인 나무 막대기(길이 (길이 84cm, 두께 1.3cm)로 원고의 머리를 때리자, 최□□은 화가 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분무기로 원고 머리를 내리쳤다.”

 

  1심과 2심의 사실인정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윤▽▽가 가해행위를 도발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원고는 핏줄만 조선 사람일 뿐 중국말 밖에 모르는 중국사람이었고, 한국에 온 지 불과 4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도 공장에서 핀잔을 많이 들어온 터였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애로점을 설문한 조사에서 의사소통 문제는 저임금, 장시간근로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인권침해 경험을 묻는 설문에서 피조사자 중 35.8%는 ‘동료나 상사의 언어폭력’을, 10.5%는 ‘동료나 상사의 구타’를 들었다. 우리는 2심 소송중 이 조사자료를 제출했는데, 이것은 윤▽▽의 직장 안 인간관계나 직무에는 의사소통 장애와 동료들로부터의 폭언이나 욕설, 구타가 내재되거나 통상 수반된다는 점을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상 팀장은 경찰조사에서 “평소에도 윤▽▽가 외국인이다보니 본인의 업무지시 전달이 잘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재해일에도 윤▽▽의 작업에 대해 바르게 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하였고, 그 공장의 사업주도 “외국인들의 경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업무상 실수할 경우 간혹 야단치고 할 때도 있음”이라고 진술했다. 의사소통이 안되다 보니 팀장은 그 날도 윤▽▽를 윽박질렀고, 그 말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윤▽▽는 멀뚱거리며 어색하게 웃다가 팀장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팀장이 윤▽▽의 뺨을 후려쳤으니 무척 억울하고 황당했던 윤▽▽는 손에 들고 있던 자재로 최□□의 머리를 때리게 된 것이다. 굳이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은 것이 아니고, 들고 있던 물건으로 때렸다는 것은 도발의 수위를 낮출 만한 근거가 된다.

 

시발이 업무와 관련됐다면 가해자의 폭력성은 문제안돼

 

  이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가해자인 팀장이 과거 폭력 전과로 벌금 20만원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와같은 팀장의 폭력성은 직무에 내재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폭력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업장내 폭행 사건을 다룰 때 가끔 혼동할 수 있는 것이 가해자의 도발 여부 문제를 가해자에게까지 잘못 확대하는 점이다. 문제의 폭행이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업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사적 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당연히 업무상재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갑과 을이 치정관계에 있고, 그것이 이유가 되어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갑이 야간당직 중 자고 있는데, 회사 기물을 훔치려 들어온 을이 놀라서 저항하는 갑을 폭행했다면 을이 이 폭행 사건의 주도자이고, 도발자이고, 그의 폭력성이나 범법성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업무상재해가 될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행을 과도하게 도발하지만 않았다면, 업무를 하던 중, 업무와 관련된 시비로, 업무와 관련된 감정으로 인해 폭행이 유발되었다는 것만 인정된다면 업무상재해인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거나 장난삼아 던지는 아이의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을 구제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은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가해자의 폭력성 주장은 항소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단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되고 말았다.

 

  “한국에 온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이○○씨의 처지가 딱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아뇨, 나는 그래도 한국이 좋아요. 원무과에서도 돈 한푼 없는 나를 봐주느라고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 간병도 하라고 소개해 주고요. 처음에는 근처 교회에서 매달 5만원씩 주고요, 돈도 걷어주고요, 좋은 사무실 만나 재판도 이기고요. 그리고 한국은 깨끗하잖아요. 중국은 말도 못하게 더러워요. 나는 깨끗한 게 좋아요.”

 

  그의 특유의 낙천성과 끈기 때문인가? 원망이 많을 만도 한데, 한 점 그런 법이 없다. 아들의 화에도 끄떡없는 듯하다. 그는 직접 아들을 간병하면서 간병료를 받고, 덤으로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를 간병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무척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그 동안 그를 비운의 여인, 쉬운 말로 하면 팔자 센 여자라고 딱하게 생각했는데, 오늘 나는 그에게 부럽다고 했다. 배워야겠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용감해요!